우리 합숙하는 C사(舍)에 K양이 들어온 뒤로 사내(舍內)에 일종의 암류(暗流)가 흘렀었다. 일개 이성의 내습(來襲)이 사생들에게 얼마만큼 긴장한 기분을 주는 동시에, 일면으로는 호상간에 의문의 눈으로 대하게 하는 불순한 감정을 가지게 하였다. 외면으로는 더욱 활기 있고 평화로운 듯하여 보였지마는, 기실은 그 이면에 질시와 시의(猜疑)가 가득하였었다.
이익상
호는 성해(星海), 전라북도 전주 출신으로 1925년 전후 4-5년 정도
짧은 기간 동안 작품 활동을 하였다.동아일보 학예부장을 거쳐 매일신보 편집국장을 지냈다.
1923년 「백조」동인이었던 김기진, 박영희 등과 파스큘라(PASKYULA)라는
문학단체를 만들었으며, 신경향파문학의 중심인물이었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잡기 「생장」,「조선문단」,「개벽」등에 발표되었는데,
대표작으로는 「어촌」,「흙의 세례」,「젊은 교사」,「짓밟힌 진주」,
「광란」,「길 잃는 범선」등이 있다.
1933년 「만주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일본의 침략정책과 만주국 건설의 정당화를 찬양하는
글을 21회에 걸쳐 매일신보에 연재하는 등 신민통치에 협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