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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남

다시읽는 한국문학 추천도서77

《악부자》는 1935년 "신조선"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경춘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먹고 살만하던 재산이 어디로 술술술 흩어지고, 가진 것 없는 경춘(敬春)은 그 이름보다 "택부자"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경춘이 "택부자"라면 성을 내므로 저희들끼리 암호를 붙였다. 경춘이 유별나게 턱이 긴고로 아고모찌(顎持)라고 하자는 것이다. 경춘의 부모, 형제, 자식 모두 폐병으로 죽었다. 이제는 경춘의 아내가 기침을 한다. 경춘은 고생만 하는 아내가 불쌍하다.
《악부자》는 1935년 "신조선"에 발표된 단편소설이다.
경춘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먹고 살만하던 재산이 어디로 술술술 흩어지고,
가진 것 없는 경춘(敬春)은 그 이름보다 "택부자"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경춘이 "택부자"라면 성을 내므로 저희들끼리 암호를 붙였다.
경춘이 유별나게 턱이 긴고로 아고모찌(顎持)라고 하자는 것이다.
경춘의 부모, 형제, 자식 모두 폐병으로 죽었다.
이제는 경춘의 아내가 기침을 한다. 경춘은 고생만 하는 아내가 불쌍하다.
강경애


1907년 황해도 송화에서 태어났으며, 5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이 시기에 겪었던 경제적 빈곤과 심리적 결핍이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21년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동맹휴학에 가담한 관계로 퇴학처분을 받았다.
1923년 문학강연회를 계기로 양주동과 만나게 되었으며, 동덕여학교 3학년에 편입하였다.
양주동과의 관계가 파탄에 이른 1924년 9월 귀향하여 야학운동, 신간회 등 여러 사회운동에 몰두하였다.
1931년 간도를 여행하고 귀국한 후 작품활동을 하였으며, 1931년 조선일보에 「파금」을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장하일과 결혼 후 간도로 이주해 안수길, 박영준 등과 함께 동인지 「북향」에 참여했다.
1939년 조선일보 간도 지국장을 지냈으나 건강이 나빠져 1943년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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