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 ‘쟘’ 이라는 귀여운 이름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개구쟁이 오빠는 언제나
“야 잠자리!”
하고 나를 불렀다.
호리호리한 폼에 눈만 몹시 컸기 때문에 불린 별명이었다.
혼자 구석에서 훌쩍훌쩍 그 벽에는 세계지도가 붙어있었다.
십삼 세 소녀의 꿈은 끝없이 펼쳐졌다.
그때부터 나의 홀짝홀짝 구석에 붙어있는 세계지도는
내 생활의 전부인듯이 생각되었다.
정말로 나는 이상한 여자애였다.
이 이상한 여자애에게도 시간은 흐르고 세월은 쌓여
열아홉 살의 봄을, 아니 열아홉 살의 가을을 맞이했다.
드디어 찬스가 왔다.
감상의 오랜 꿈은 빨간 열매로 익어
작은 손가방 하나를 든 소녀 여행자가 된 것이다.
백신애
대구사범학교 강습과를 졸업하였고 영천공립보통학교 교원에 이어
자인공립보통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다 여성동우회, 여자청년동맹 등에
가입활동한 것이 탄로나 해임당하였다.
1929년 조선일보에 박계화라는 필명으로 「나의 어머니」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하였다. 그녀의 대표작으로는 러시아 국경을 넘나드는
한국인의 비극적인 모습을 그린 「꺼래이」와 가난하기 그지없는
집안의 '매촌댁 늙은이'의 애환을 그린 「적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