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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전-한국문학추천도서 183

이광수가 '장백산인'이라는 필명으로 동아일보에 연재한 작품이다. 1923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111회로 완결되었다. 박지원의 「허생전」을 기반으로 작가가 일부를 추가하였다. 이광수에 의해 추가된 내용 중, 임진왜란 때 일본병을 살려 주고 지낸 일화에서 친일적 성향이 보인다. 원작에서는 달리 효종대왕이 허생의 의견을 수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역시 박지원의 「허생전」을 원작으로 한 채만식의 「허생전」 과 비교해서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광수가 '장백산인'이라는 필명으로 동아일보에 연재한 작품이다. 1923년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111회로 완결되었다.
박지원의 「허생전」을 기반으로 작가가 일부를 추가하였다. 이광수에 의해 추가된 내용 중, 임진왜란 때 일본병을 살려 주고 지낸 일화에서 친일적 성향이 보인다.
원작에서는 달리 효종대왕이 허생의 의견을 수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역시 박지원의 「허생전」을 원작으로 한 채만식의 「허생전」 과 비교해서 보는 것을 추천한다.
이광수

호는 춘원(春園). 1892년 평안북도 정주 출신이다.
1907년 일본 메이지학원 중학부에 편입했으며, 동창회보인 백금학보 제 19호에 일본어로 쓴
《사랑인가》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1910년 메이지학원을 졸업하고 귀국해 오산학교 교원이 되며, 7월 백혜순과 혼인하였다.
1914년 미국에서 발간되던 신한민보(新韓民報)의 주필로 내정되었으나
제 1차 세계대전 발발로 미국에 가지 못하게 된다.
1917년 1월 1일부터 5월 14일까지 매일신보에 장편소설《무정》을
연재하였다. 1917년 두 번째 장편 《개척자》를 매일신보에 연재하기 시작하여 젊은층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자유로운 결혼생활을 주장한 《신생활론》, 《자녀중심론》같은 글을
발표해 당시 사회에 논란을 불려 일으켰으니 그 배경에는 폐병이 재발해
병상에서 허영숙의 간호가 인연이 되어 결혼을 약속하고 이듬 해 허영숙과
베이징으로 도피하는 사건이 원인이다.그들은 몇년 후 정식으로 혼인하였다.
작가는 『2.8 독립선언서』를 작성했으며 임시정부 사료편찬위원회 주임을 맡았고,
임시정부에서 발행한 독립신문의 사장 겸 편집국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수양동우회 발족에 참여 하였으며, 동아일보에 《마의태자》, 《단종애사》,
《흙》등을 연재하며 활발한 활동을 하였으나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도산 안창호와 함께 투옥되었다가
재판을 받던 중 전향을 선언하였다.
이후 매일신보에 황민화운동, 창씨개명과 황도군 징병제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해방 후 도산 안창호 기념사업회의 의뢰로 1947년 1월 집필을 시작해
5월에 《도산 안창호》를 출간한다. 1949년에는 일제강점기 자신의
행적에 대한 경위와 맥락을 밝힌 《나의 고백》을 출간하기도 하였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불기소 처분되었다. 1950년 7월 한국전쟁 때 납북되었다가
10월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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