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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명 시집

1930년대 가부장적인 당시의 분위기에서 여성 문인들은 대중의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노천명은 독특한 시어(詩語)로 본인만의 목소리를 낸 몇 안되는 여성 작가였다. 일제 말기에 많은 문인들과 마찬가지로 일제의 침략의 정당성에 동조하는 활동을 함으로써 인생의 큰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노천명은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내성적이고 자존심이 강하여 친구도 많지 않았고, 연애도 거의 하지 않았으며 김광진과의 연애가 거의 유일무일한 연애였다고 한다. 그녀의 대표작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인 "사슴"은 고고해 보이지만 자만심과 고독으로 바닥에 가라앉고 있는 그녀 자신이다. 1957년 길에서 쓰려져 재생불능성 뇌빈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입원비 때문에 곤란한 처지에 있다는 소..

1930년대 가부장적인 당시의 분위기에서 여성 문인들은 대중의 호기심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노천명은 독특한 시어(詩語)로 본인만의 목소리를 낸 몇 안되는 여성 작가였다.
일제 말기에 많은 문인들과 마찬가지로 일제의 침략의 정당성에 동조하는 활동을 함으로써
인생의 큰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노천명은 평생 독신으로 지냈다. 내성적이고 자존심이 강하여 친구도 많지 않았고,
연애도 거의 하지 않았으며 김광진과의 연애가 거의 유일무일한 연애였다고 한다.
그녀의 대표작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인 "사슴"은 고고해 보이지만
자만심과 고독으로 바닥에 가라앉고 있는 그녀 자신이다.
1957년 길에서 쓰려져 재생불능성 뇌빈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입원비 때문에 곤란한 처지에 있다는 소식에 친우들이 약간의 돈이라도 줄라치면,
"내가 거진 주 아니?"라며 거절했다고 하니 그녀의 성격이 어떠했을지 짐작 할 수 있겠다.
그녀 자신도 "자화상"이라는 시를 통해 자신이 이런 성격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 대처럼 꺾어는 질망정 구리모양 휘어지기가 어려운 성격은 가끔 자신을 괴롭힌다.
그녀가 죽은 다름 해인 1958년에 유고시집 "사슴의 노래"가 출간됐다.
"노천명 시집"에서는 그녀의 시 40편을 골라 수록했다.
노천명

1911년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났다.
1930년 진명여학교를 졸업했다. 1932년 신동아에 "밤의 찬미"를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1934년 이화여자전문재학 영문과 졸업 후 "조선중앙일보"에
입사, 1937년에는 잡지 "여성"의 편집을 맡기도 했다.
1938년 그녀의 대표작인 "사슴" "자화상" 등이 실린 시집 "산호림"을 출간했다.
1942년 일본군의 무운을 비는 "기원", "노래하자 이 날을" 등 인생의 오점을 남기는
친일활동을 했다. 1945년 두번째 시집 "창변"을 출간했다.
해방 이후 1948년 수필집 "산딸기"를 출간. 1955년 서라벌예술대학에 출강을 했으며
1957년 12월 누하동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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