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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 시집

이육사는 독립운동으로 일생 17번이나 감옥에 투옥된 독립운동가이며 시인이다. 그의 본명은 원록이나 대구교도소 수감 중 죄수번호 "64" 또는 "264"에서 자음을 따 "李陸史"로 작품을 발표한다. 그의 시는 일제 식민지하의 민족의 비운을 강렬한 저항의지로 표현했으며, 또 신념을 행동으로 보여준 실천 문학가이기도 하다. 시인 신석초는 이육사를 무언가 구름을 잡는 것 같은 공상적인 데가 있다고 회고했다. 중국과 일본에서의 투쟁 활동과 구금은 그가 민족정기보다는, 민족을 초월한 인류애를 구현하도록 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거듭된 옥사로 육사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진다. 마흔의 짧은 생애 동안 많은 시를 남기지는 못 했지만 여름이 되면 지금도 우리는 그의 시, "청포도"가 떠오른다...
이육사는 독립운동으로 일생 17번이나 감옥에 투옥된 독립운동가이며 시인이다.
그의 본명은 원록이나 대구교도소 수감 중 죄수번호 "64" 또는 "264"에서
자음을 따 "李陸史"로 작품을 발표한다.
그의 시는 일제 식민지하의 민족의 비운을 강렬한 저항의지로 표현했으며,
또 신념을 행동으로 보여준 실천 문학가이기도 하다.
시인 신석초는 이육사를 무언가 구름을 잡는 것 같은 공상적인 데가 있다고 회고했다.
중국과 일본에서의 투쟁 활동과 구금은 그가 민족정기보다는,
민족을 초월한 인류애를 구현하도록 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거듭된 옥사로 육사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진다.
마흔의 짧은 생애 동안 많은 시를 남기지는 못 했지만 여름이 되면 지금도 우리는
그의 시, "청포도"가 떠오른다.
이육사 사후 1946년 신석초를 비롯한 친우들에 의해 "육사시집"이 출간되었으며,
"이육사 시집(붉은나무)"에서는 발표 된 시를 연대 순으로 총 34편을 편집하였다.
이육사


1904년 경북 안동에서 출생.
본명은 원록(源錄)이며 육사는 조서는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좌,
3년형을 받고 투옥 됐을 때, 수인번호에서 '육사'를 따왔다.
1929년 출옥, 이듬해 다시 중국으로 건너가 여러 독립운동단체에 가담하여
독립투쟁을 벌였으며, 1933년 9월 귀국하여 이 때부터 작품에 전념,
육사란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의 첫 작품은 1935년 "신조선"에 발표한 "황혼"이다.
1937년 신석초, 윤곤강, 김광균 등과 "자오선"을 발간하여
"청포도","파초" 등의 시를 발표했다.
작품 활동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하여 전 생애를
통틀어 17회나 투옥되었다.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광야", "절정"에서
드러나듯이 식민지하의 꺼지지 않는 민족정신을 노래한 것이 특징이다.
1943년 6월 피검되어 북경으로 압송되어 수감 중 북경의 감옥에서 옥사했다.
그의 사후 1946년 유고가 정리되어 "육사시집"이 발간되었다.
1968년 고향인 안동의 낙동강 곁에 육사의 시비가 세워진다.
시비에는 시인이 죽은 뒤 아우가 수습한 이육사의 "광야"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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